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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시나브로 자유글

행운 시나브로의 '성장 스토리'

by 행운 시나브로 2022. 1. 15.

황금 네잎클로버 가져가셔요.^^

 

 안녕하세요, 좋은 글로써 함께 성장하길 원하는 행운 시나브로입니다! (꾸벅)

 

 오늘은 제 인생을 돌아보며, 저만의 스토리텔링을 닦아보려고 해요!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3살일 때, 부모님(저의 할아버지, 할머니)을 여의시고 친척들 손에 자라셨죠. 그리곤 친척들에게 여기 저기 돈을 빌려 대학교를 나오셨습니다.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혼을 하셨고, 저와 동생을 낳으셨죠. 하지만 직장을 다니면서는 일 못하겠다고 그만두시며 우리집은 가난하게 출발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 사업을 하셔서 지금은 어느정도 자수성가를 하셨어요.

 

 그런 아버지 모습을 어려서부터 보고 자라며, 저의 무의식에 학습된 것들이 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는 가족의 생계가 걸려있으니..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노력하며 결과를 내려는 모습,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가시는 모습, 포기하지 않고 될 때까지 시도해보고 그럼에도 안되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는 모습, 집에 돌아가기 전에 돌멩이 하나라도 주워서 간다는 말처럼 반드시 무언가는 얻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 하기로 했으면 누가 뭐라해도 추진력 있게 밀어붙이는 모습 등.. 정신력과 노력에 대해서는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살아가시다 보니, 점차 생활에 안정이 찾아오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도 몇 년째 친척들에게 물질적으로 어느정도 지원도 해가며 보답하고 살아가시죠.

 

 그러나 정작 가족에게는 엄격하고, 고집이 매우 강하셨습니다. 집에서는 아버지의 말이 곧 법이며, 지켜지지 않거나 언짢을 시에는 강압적으로 대하셨죠. 마음에 안들거나 대들기라도 하면 골프채든 싸대기든 때리기도 하면서 말이죠.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성적을 못받아와서, 늦게 까지 놀다 와서, 컴퓨터 게임 하는 것이 마음에 안들어서, 젓가락질을 잘 못해서, 음식 먹을 때 소리내서, 글씨를 잘 못써서, 내가 말한 게 만족스럽지 못해서 등등.

 

 그런 아버지가 너무나도 싫었고, 같이 있으면 공기가 무거워 집에만 가면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가 매일 이어졌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게 두려웠어요. 감정을 억누르고 살다보니.. 내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며 계속 눈치를 보고 지내왔고, 무언가 표현을 해도 받아들여지는 건 고사하고 도리어 생각을 그렇게밖에 못하냐며 비난을 받게 되니 말도 못꺼내는 소심한 멍청이가 되어있었습니다.

 

 제 무의식에는 분출되지 못한 분노와 복수심이 자리잡고 있어요. 10대 때는 아버지 말이 듣기 싫고 짜증나서 더 어긋나는 삶을 살아서 속상하게 만들어야겠다 하며 공부는 하지도 않고, 맨날 축구하고 밤새 게임하고 놀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20대에는 아버지 보다 더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서 아버지의 말이 틀렸고, 내가 하는 방식이 옳았다고 아주 큰 소리로 증명하고 싶어서 책을 읽고, 여러 가지 도전을 해보려 했지만 성향상 두려움이 커서 좌절한 경우가 많았죠.

 


 

 그렇게 30대 중반까지 나이를 먹어온 저는 스스로가 너무 못나 보이고, 어디에 있어도 행복하지를 않으니 도대체 왜 살아야하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살기 싫은데 죽는 건 용기가 나지 않고, 죽지 않을 꺼라면 이대로 살지는 말자. 이대로 살 바엔 발버둥이라도 쳐보자. 그래도 변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생각을 다시 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며.. 2020년 5월, 데일카네기 코스라는 교육에 등록을 했습니다. 교육비는 무려.. 130만 원이나 했죠. 당장 쓰기에는 저에겐 매우 큰 돈이었기에 큰 결심이 따랐습니다.

 

 

 심지어 서울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에 9주 동안 진행하는 수업이어서 강원도 원주에 사는 저는 왔다갔다 차비에 교육이 끝나는 시간에.. 막차까지 고려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인생 뭐..있나 해보는거지. 하며 결제부터 했고, 직장을 조율해야 했습니다. 1주일 내내 운영되는 직장이었고, 그 중 주 5일 근무였는데.. 다행히도 9주 동안 수요일마다 교육 받으러 가는 대신 주말에 나오기로 소통이 되어 환경이 만들어졌죠.

 

 완전 바닥이었던 저의 마음상태는 이 시점을 기준으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 한의사도 계셨고, 사업하시는 분, 군대 장교, 미국에서 500명 대상으로 스피치해서 우승한 사람, 주식 애널리스트 등.. 이미 아쉬울 게 없어보이는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있더군요. 그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없는 촌놈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9주 동안 이렇게 삶에 열정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 것만으로도 이미 저에겐 성장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었네요.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니 다양하고 긍정적인 생각들을 듣게 되며 제 생각의 틀에 금이 가기 시작했죠. 또한 교육이수 과정 중에 미션이 항상 주어졌는데, 데일카네기 인간관계론, 행복론, 스피치&커뮤니케이션 이렇게 총 3권의 책을 매주 한 챕터씩 다 읽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육 때는 사람들 앞에서 매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죠. 데일카네기 코스를 이수하는 과정 중에는 이런 미션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성공했던 경험에 대해 나열하고 발표하기. 나에게 성공했던 경험이 있나? 진짜 다음 교육 발표 시간까지 1주일 내내 떠올려봐도 생각나는 경험이 없었어요.

 

 강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저 이번 미션은 너무 어렵고.. 못하겠어요, 성공한 경험도 없고 떠오르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랬더니 "소소하게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내가 겪었던 성공 경험들을 떠올려보세요. 분명 있을 거예요." 라고 성취 경험의 기준을 잡아주시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제가 성공의 기준을 크게 잡아서 떠오르지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발표를 하러 가기 전날에 이것저것 떠오르기 시작하더라고요.

 


 

 지금부터 그 스토리를 하나씩 떠올리며 적어보겠습니다. 

 

 1998년,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입니다. 당시엔 '포켓몬스터' 라는 만화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슈퍼마켓에 가면 빵마다 포켓몬스터 스티커가 하나씩 들어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죠. 저는 빵을 종종 사먹으며 스티커를 하나씩 하나씩 모아서 A4 용지 크기의 책받침에 종류별로 붙여놓았습니다.

 

(출처) 인터넷에서 이미지 검색

 

 자주 나오는 스티커부터 희귀한 스티커까지. 책받침이 가득 차도록 스티커를 모았을 때 학교에 들고갔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죠. 그런데. 친구들의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너도 나도 부럽다며, 갖고 싶다며 반응을 보였던 것이죠.

 

 저는 집에 가서 이걸 다음날 팔아야겠다 결정하고, 스티커마다 가격을 책정했습니다. 자주 나오는 스티커는 100원, 점점 희귀할 수록 100원씩 올려서 가장 잘 안나오는 스티커는 빵 값이랑 동일한 500원까지 책정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들고 가서 경매를 했죠.

 

 결과는? 그렇게 책받침에 붙인 스티커를 모두 팔아 무려 2만원이라는 수익을 냈습니다. 그때 초등학생인 저에게 2만원은 상당히 큰 돈이었죠. 저는 그 돈으로 한 대에 무려 6,000원이나 하는 미니카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미니카도 팔았으면 좋았으련만.. 갖고 놀다가 고장나고 배터리가 닳고 하는 문제가 있어서 소장만 했습니다.

 

 

 저는 축구를 좋아합니다. 어렸을 적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축구부가 없었죠. 아쉬운 마음에 축구를 같이 할 친구들을 모아서 그룹을 만들었어요. 제가 모았으니.. 자연스레 제가 축구부를 창설하게 되었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근처 초등학교에 가서 축구 시합을 하자며 경기를 하기도 했죠.

 

 중학생 때도 축구랑 게임만 하며 지냈던 저는 공부를 정말 안했습니다.(사춘기 + 아버지에 대한 불만) 그러던 저에게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장나라를 닮은 전교 1등의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는 일이 있었어요. 저는 뭣도 없었는데 운동 잘하고 친구들을 리드하는 모습이 좋아서 사귀었나 봅니다. 그 친구를 만나는데.. 여자친구의 성적이 학기를 거듭할수록 전교 40등까지 밀려난거예요. 여자친구의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은 원인을 찾다가 저에게 찾아오십니다. 여자친구의 인생을 위해 헤어지라고..

 

 너무 충격이었어요. 난 뭘 잘못한 것도 없는데..? 좋아하는 사람이랑 왜 헤어져야하지? 그래서 같이 열심히 공부해보기로 합니다. 여자친구의 성적도 회복이 되어져 갔지만 제 성적이 진짜 놀라웠죠. 전교 꼴찌에 가깝던 제 등수가..전교 100등 안에 들게 됩니다. 내가 뭘 안해서 그렇지 하기로 마음 먹으면 어느정도 하긴 하는구나를 느꼈던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결국 여자친구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의 강한 반대로 인해 헤어지게 됩니다. 연락도 못하게 하셨어요. 그때의 상실감이 컸던 것인지 저는 또 게임과 축구에 더 빠져 살게 됩니다. 성적은 급등 후 폭락.

 

 

 저는 자존심이 강한건지 축구나 게임에서 지는 걸 정말 엄청엄청엄청 싫어했어요. 이겨야 재밌지, 지면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축구를 하루에 6시간씩 하고 와서도, 밤에 가로등 밑에서 벽에 공을 차면서 슛팅 연습, 패스 연습, 볼 감각 익히기, 컨트롤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축구를 배운 적도 없는데, 축구부였던 친구들보다 잘찬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지기 시작하죠. 축구부 친구들이 시합을 하자며 붙자고 합니다. 이겼는지 졌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덕분에 저는 실력이 더 좋아지게 되었어요.

 

 그렇게 친구들은 자체적으로 제 이름을 딴 축구교실을 만들어서 저에게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볼 컨트롤부터 슛팅까지. 주말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었었죠. 떠올려보니 운동신경이 좋아 초등학생 때 스키를 타면서도 어른들에게 돈을 1,000원 이하로 받으면서 강습을 해드렸었던 기억도 있네요. 10살도 안된 꼬마가 스키장 최상급 코스를 누비고 다녔으니.. 초급자 코스는 스키를 탄 채로 올라가서 리프트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했습니다. 그걸 리프트 타고 올라가던 어른 분들이 제안을 하셨던 것이죠.

 

 

 학창시절 저는 게임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밤새 잠도 안자고 게임을 해서 키가 안컸어요... 주로 했던 게임은 스타크래프트와 스페셜포스라는 게임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친구들이 너 그렇게 게임하다가 죽어서 뉴스에 나올 꺼 같애. 아니면 꿈이 PC방 사장님이냐. 라는 말을 종종 하곤 했죠.. 한 번 피씨방에 가면 3-40시간씩 하고 나왔으니까요.

 

 지는 걸 싫어하는 저는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도 잘해야 했습니다. 저의 플레이를 다 리플레이 저장해서 복기해보고, 프로게이머의 경기를 보며 분석하고, 적용 및 연습을 했습니다. 그 결과 학교에서는 물론, 들어간 길드에서도 상위권에 들어가게 되었었죠. 스페셜포스를 할 때에도 나보다 총을 잘 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연습을 했고, 수류탄 던지는 연습, 발소리 안나게 빠르게 움직이는 연습을 매일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프로게이머 구단에 200명 테스트 하는 날, 2등을 하며 들어간 날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네요.

 

 

 허나.. 그렇게 살다보니 저는 대학교에 입학하고도 게임만 했습니다. 술 먹는 것도 싫어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공부는 더 싫고.. 1학년 내내 학교를 나가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전과목 ALL F. 1학년 1학기, 2학기 학사경고를 받게 됩니다. 학사경고 1번 더 누적되면 강제 퇴학을 당할 위기가 닥쳤어요.

 

 아버지는 도저히 볼 수 없었는지, 군대로 꺼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바로 군대로 꺼지게 되었죠. 군대에서는 (쓰레기 같은)선임들이 많았지만 운이 좋게 맞선임을 정말 잘 만났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꿈을 가진 동갑 친구였죠. 그 선임을 따라 도서관에 자주 가게 되면서 저도 책을 많이 접하게 되었고, 책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제대하면 정신차리고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돼죠.

 

 그리고 대학교 복학. 저는 컴퓨터공학이 전공이었습니다. 전공 과목으로 배우는게 뭔지도 몰랐어요. 그런 상태로 2학년으로 복학했는데 1학년 과목을 다 재수강해야했습니다. 1학년 과목과 2학년 과목을 동시에 들어야 하는 상황. 2학년 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때는 1학년 등록금을 거의 1,000만 원 날린 것이 아깝기도 하고, 더이상 불효하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또래에 비해 너무 막 살아서 상식조차 부족하다는 걸 느끼며 얼른 따라잡자! 마음먹고 공부를 파게 되었어요.

 

 2학년 1학기 성적이 나온 날. 저는 1학년 과목을 다 만회하고, 과탑이 되며 장학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등수를 왜 가리고 저장했었는지 기억이 안남..

 어떤 과목은 저 혼자만 100점을 받은 과목도 있었네요. 무튼 복학 이후로는 평점을 계속 4점을 넘기면서, 3학년부터 학점을 24학점씩 듣고 고등학교 같은 스케줄을 소화하며 졸업까지 하게 됩니다.

 

 

 저때는 어찌 열심히 살았는지.. 방학 때는 강남에 고시원을 구하고, 프로그래밍 학원과 영어학원, 헬스장을 등록하고 하루 4시간만 자면서 2달동안 매일 그렇게 지냈습니다. 새벽 6-9시에는 영어학원과 헬스장 → 9-18시에는 프로그래밍 학원 → 19-21시에는 다른 영어학원 → 방에 들어와서는 숙제를 하고, 블로그 글을 취미로 썼었습니다. → 주말에는 CEO 강의를 찾아가 들었고, 맛집이나 영화를 보거나, 교보문고에 책을 보러 갔었죠.

 

 당시 블로그를 쓸 때는 정말 잡다한 걸 썼는데.. 강남 맛집, 강남 학원, 놀러간 곳 리뷰, 책이나 영화 보고 리뷰, 풍경사진, CEO 강연 찾아가서 듣고 난 후기, 전공과목 과제 풀이 등..을 적었습니다. 남들이 들어와서 보는 것보다 그냥 제가 뭘 했는지 기록하는게 좋았어요.

 

 그런데 이때.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제 글들은 네이버 상위 노출이 되었고, 강남에 맛집들과 영어학원에서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어요. 블로그 포스팅을 해주면 공짜로 코스요리를 대접해주겠다, 영어학원 1달 무료 수강하게 해주겠다, 블로그 200만원에 팔아라 이런 연락들이요. 저는 괜히 쓸데없이 남이 하라는 건 또 안하는 고집을 부렸죠. 제가 직접 먹어보고, 경험해보고 느낀 걸 적는 게 좋았던 건데 그걸 광고처럼 글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때 블로그 마케팅으로 사고를 확장해서 마스터했다면 지금쯤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진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그런 활동들(?)이 바탕이 되어 온라인 카페에서 책 이벤트를 하거나 하면, 글을 써서 책을 무료로 선물 받고는 했어요. 책이라는 값진 가치를 돈 안들이고 얻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저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 생각하고, 직장을 구하지도 않으며 방황하게 됩니다. 그렇게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 뭘 할 수 있는지 찾으며 꽤 오랜 기간인..7-8년을 보냅니다.

 

 그 기간동안에는 문화 행사 기획도 해보고, 나중에 사업하면 해외 비즈니스를 위해 해외 친구들 사겨두어야지 하며 그 친구들과 스카이프도 하고, 직접 만나기도 해보고요. CS 강사 자격증을 따서 소소하게 강의를 하거나 20대 친구들을 상담해주기도 하는 등..의 생활들을 했습니다.

 

 유동적인 수입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생활이 장기간 이어지자 저는 이상태로 결혼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33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직장을 구해봅니다. 근데 경력도 없고, 스펙도 없고, 나이만 먹은 저를 써주는 곳은 없더라고요. 도대체 뭐하면서 살아왔냐고 면접에서 핀잔이나 듣고 오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알바도 나이때문에 제한이 걸려서 못구하고요.

 

 쿠팡이나 CJ 택배, 우체국 물류센터, 의류나 음료수 물류센터, 야채 배달 등.. 몸을 써서 돈을 벌어야 하는 곳을 돌아다녔죠. 정말 몸은 고되고, 시간이 갈수록 망가지니.. 이렇게 살다가는 미래가 캄캄하겠더라고요. 고정적인 수입을 일단 벌고, 추가로 제가 계발하고 싶은 부분을 공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운좋게 지금은 아는 지인을 통해서 사무기기를 렌탈/판매 하는 곳에 취직이 되었고 안정적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근 전과 퇴근 후에는 2-3시간씩 책을 읽고, 강의를 통해 영업이나 마케팅도 배우고, 글을 쓰면서 지냅니다.

 

 

 저는 책 읽기, 글 쓰기, 사고 확장하기. 이 3가지를 앞으로 죽을 때까지 반복해보려고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고, 글을 쓰다보면 사고가 정리가 되며 논리력과 설득력이 생기고,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한 방법을 찾으며 사고를 확장해가다 보면.. 어느덧 지혜가 생기고, 그 지혜를 통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고, 그렇게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성장하게 되며 삶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에요.

 

 

 2년 후, 5년 후, 10년 후에는 또 다른 성취 경험들이 쌓이고, 성공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그 시작을 이 블로그를 통해 해보려고 해요.

 

 좋은 글을 통해 삶이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행운을 가져다드리는 블로그가 되기를 원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 함께 성장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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